시리아 소년의 새로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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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0. 시리아 어린이 난민들의 숫자다. 3년 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의 피해로 어린이 난민의 수는 어느덧 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약 75%는 11세 미만의 아이들. 시리아 소년 압둘카림은 반정부군을 진압하려는 장갑차에 밟혀 오른팔이 으스러졌다. 동시에 엔지니어가 되고자 했던 소년의 꿈도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압둘카림은 우리대학 병원 김정태 교수(의대∙의학)의 치료로 좀 더 '자유로운 오른팔'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 받은 특별한 사랑만큼 남에게 베풀며 살겠다는 카림. 자신처럼 불편한 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카림의 새로운 희망을 인터넷한양이 담아냈다.
극적으로 한국에 건너온 시리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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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소년 압둘카림과 한국의 인연은 올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구호 NGO단체인 '기아대책'은 모금홍보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요르단을 방문했다가 팔이 심하게 구겨진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의 이름은 압둘카림(Abd Alkareem Yassin Dabool). 3년 전, 11살이었던 카림은 시리아 내전 중 정부군의 장갑차에 깔려 오른팔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열악한 환경 속에 카림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두 개의 손가락만 간신히 사용하며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기아대책 측은 카림과의 만남 직후 치료를 위해 카림을 한국에 데려오기를 시도했지만 난민 신분이라 여권발급이 쉽지 않았다.
기아대책의 유진희 팀장은 "2월에 카림의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한국에 데려와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지만 시리아와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지 않아 여권발급이 어려웠다" 며 "난민 신분에 여권발급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카림의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고 말했다. 7월이 돼서야 극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은 카림은 한국에 방문, 미세 재건성형의 권위자로 알려진 우리대학 병원 김정태 교수(의대∙의학)를 찾았다. 김 교수가 그간 해외 재해로 인한 환자들을 꾸준히 치료해온 덕에 이루어진 인연이었다.
재건성형의 권위자 김정태 교수(의대∙의학)와 압둘카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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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의 팔 수술을 집도한 김정태 교수(의대∙의학)는 우리대학 의대 81학번으로, 7년 간 동아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뒤 지난 11년 동안 우리대학 병원에서 성형외과 전공의로 재직해오고 있다. 타히티의 지진, 태국의 쓰나미로 발생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등 해외재해로 인한 많은 환자들이 김 교수의 손을 거쳐 갔다. 해외구호 단체인 기아대책과 연을 이어오던 김 교수였기에 카림 역시 자연스레 그의 치료를 받게 됐다. 성형은 더 나은 외모를 갖기 위해 시술하는 '미용성형'과 결함이 있는 부위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재건성형'으로 나뉜다. 흔히 성형수술이라 하면 미용성형만을 떠올리지만 재건성형은 성형수술의 근간이 되는 분야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김 교수는 "몇 년 전부터 해외재해로 인한 환자들을 치료해오고 있다. 미세한 부위의 재건성형 분야에서는 한양대학교가 최고권위를 가지고 있다" 며 "중국, 러시아, 아시아 등지에서 치료를 위해 우리대학 병원을 많이 방문하곤 한다"고 말했다.
카림이 김 교수를 처음 만났을 당시, 카림의 팔은 인대가 녹아 없어졌고 약간의 살만 겨우 붙어있는 상태였다. 인대와 근육이 많이 손상돼서 손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지난 7월 20일, 장장 11시간의 대수술 끝에 카림의 손은 재위치를 찾았고 재활치료를 통해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됐다. 김 교수는 "초기 치료가 빨랐다면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했겠지만 치료가 늦어 아쉽다" 며 "수술을 무사히 잘 마쳤지만 앞으로 재활과정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카림이 고국으로 돌아가 재활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재활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카림의 경우, 수술 후 1, 2년의 충분한 재활치료 기간이 필요하지만 비용 문제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기아본부는 모금운동을 진행 중이다. (예금주 : (사) 한국국제기아대책, 우리은행 1005-401-710934)
13살 소년에게 생긴 새로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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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카림은 현재 우리대학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시끌벅적하게 병원 곳곳을 뛰어다니는 카림. 시리아에서 온 소년은 어느덧 병원의 유명인사가 됐다. 기아대책의 유 팀장은 "카림이 한국에 와서 깨끗한 환경에 무척 만족했다" 며 "아이 입맛이라 치킨이나 피자를 좋아한다. 한국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며 카림의 적응력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쾌적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지내던 카림이 다시 고국에 돌아가 얼마나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불안정한 시리아의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카림의 꿈은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사고 후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된 카림에게 엔지니어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최근, 카림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자신처럼 불편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카림은 자신이 한국에서 받은 특별한 사랑만큼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곧 퇴원을 앞두고 있는 카림. 이름도 몰랐던 생소한 나라는 카림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했다. 소년이 어눌한 한국말로 외치던 "아파, 아파"는 어느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로 바뀌어 있었다. 통역을 통해 카림은 감사의 말을 남겼다. "한국인들은 무척이나 친절합니다.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준 한국 분들께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 사랑을 또 다른 친구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배슬찬 취재팀장 yahoo20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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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진 사진기자 flowkj@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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