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달의 연구자 백은옥 교수(공과대·컴퓨터)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의 경계에서 꽃피운 성과

옛 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쉬운 일이라도 협력하면 훨씬 더 쉽다는 말. 하물며 어려운 일은 어떻겠는가. 현대 사회는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삶을 위해 끝없이 더욱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려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문제해결을 위해 하나의 학문이 아닌, 여러 개의 학문이 ‘맞들면’ 그 해결은 한층 쉬워진다. 생명을 연구하는 생명과학과 기계를 연구하는 컴퓨터공학.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 만났을 땐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반대가 끌리는 이유. 백은옥 교수(공과대·컴퓨터)의 연구성과를 살펴본다.

소프트웨어로 파헤치는 유전 정보

유전자로 사람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는 모든 면에서 동일할까. 대답은 아니다. 유전 정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을 담당할 뿐, 실제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것은 신체 내에 10만 종 이상 존재하는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같은 단백질이라도 신체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며, 그 서열은 일정하다 하더라도 화학적 변화에 따라 기능을 달리한다. 이 같은 단백질의 수식화(PTM,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s)는 현대 유전 정보학의 핵심적인 요소이자 과제이다.

백 교수는 단백질 수식화를 인간이 옷을 갈아입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한 명의 사람이 등산복을 입으면 산에 가고, 정장을 입으면 회사에 가듯 하나의 단백질도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백질의 이러한 수식화는 굉장히 다양해 이를 파악하고 구별해야 더 정확한 유전 정보를 획득 할 수 있다. 백 교수의 논문 ‘SOFTWARE EYES FOR PROTEIN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S(단백질의 수식화를 알아보기 위한 소프트웨어 돋보기)’는 단백질의 다양한 수식화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해석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다뤘다. 이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한 단계 더 가깝고, 또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유전병적 측면이 강한 조기 위암 환자들을 분류할 때 기존의 유전자 정보로는 두 개의 군으로 밖에 나눌 수 없었다. 여기에 단백질의 수식화까지 고려할 경우, 세 개의 군으로 나눌 수 있어 더 세심한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백 교수의 논문은 질량분석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매스 스펙트로미트리 리뷰(Mass Spectrometry Reviews)'에 실려 연구의 효용성을 인정 받았다.

최근 생물학은 데이터 과학이라 불릴 정도다. 한 사람의 유전체 분석 데이터가 약 100GB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게 돼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인 것이다. 생물학자 혼자 이를 분석하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백 교수와 같은 공학도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추출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 백 교수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내외 대학의 교수들과 협력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대학 교수들과의 공동 연구 또한 기회가 닿으면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백 교수는 단백질 수식화를 밝히는 과정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단백질의 수가 많음은 물론, 조건에 따라 단백질 수식화의 발현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경우의 수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만 명의 사진을 한 장에 담고 각각의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확인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죠. 이 양이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합리적인 시간 내에 결과를 도출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것입니다.” 백 교수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이미 알려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단백질을 비교·대조하여 방대한 모집단을 줄여나가는 방식을 사용했다.

협력을 통한 동반상승


백 교수가 소프트웨어를 생물학에 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을 준비하고 있던 중 생물학을 전공하던 친한 선배가 생물학 연구와 관련된 데이터 산출을 부탁한 것. 그 일은 전산학을 이용한 전문적인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이는 백 교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생물학으로만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컴퓨터공학에 접합시켜 함께 해결 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지금도 높은 수준의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닌 협력을 통해 이뤄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연구를 진행할 때 어려운 점 또한 협력을 통해 해결했다. 유전 정보를 추출한 실험데이터와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할 알고리즘 모두 불확실 했기에 이를 통해 해석해낸 정보 역시 다소 불확실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정보가 틀렸을 때 실험데이터와 알고리즘 중 무엇의 잘못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를 해결 할 방법은 실험데이터와 알고리즘 사이를 계속해서 피드백하며 서로의 문제점을 파악해 나가는 것 밖에 없었다. 정확한 알고리즘을 통해 잘못된 실험데이터를 찾아내고, 정확한 실험데이터를 통해 잘못된 알고리즘을 찾아낸 것. 그 결과 실험데이터와 알고리즘 모두 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서로 발전 할 수 있었다.

현재 백 교수는 10여명의 교수들과 함께 조기위암의 유전적 측면에 대해 집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연구하는 집단에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뭇 놀라웠다. 백 교수는 “큰 병원에는 보통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유전정보를 다루는 교수님들이 있다”며 “현대 의학연구에서 컴퓨터공학은 꼭 필요한 존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쓸모 있는 연구를 정직하게


백 교수는 본인의 연구 철학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정직할 것. “자신의 연구결과가 남의 연구결과 보다 귀해 보이기 마련이죠. 하지만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자신의 데이터를 바라봐야 합니다. 정직하게 연구할 때 남의 비판도 받아 들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 수도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 것이죠.” 둘째는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연구를 할 것. “연구를 위한 연구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연구결과를 통해 무언가 더 발전하고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의 경계에 서있는 백 교수. 융합의 시대, 가장 환영 받는 연구자가 아닐까.


박종관 기자 pjkk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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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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