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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A캠퍼스 분자생명과학과 서혜명 교수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마냥 기쁜 일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퇴행성 뇌 신경계 질환의 발병률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퇴행성 뇌 신경질환의 병리학적 기전을 연구하는 서혜명 교수는 뇌과학 연구가 고령화 사회에서 더욱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과학적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라 말한다.

글. 박영임 | 사진. 손초원

▲ 분자생명과학과 서혜명 교수
▲ 분자생명과학과 서혜명 교수

헌팅턴병의 병리 기전을 밝히다

미국의 의사 헌팅턴(Huntington)에게 처음 발견된 헌팅턴병은 한때 무도병이라 불렸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멋대로 움직이는 몸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추고 싶어 추는 춤이 아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팔, 다리와 얼굴 근육의 비자발성 움직임이 헌팅턴병의 증상이다. 그러나 탈진할 때까지 춤을 추는 것이 병인 줄 몰랐던 시기에는 환자가 마녀에 씌였다며 종교재판을 열기도 했다. 모두 뇌과학이 발달하기 전 무지로 인해 벌어진 참극이다. 지난해 서혜명 교수는 헌팅턴병의 뇌 신경세포 손상 기전을 발견해 주목받았다.

“KIST 뇌과학연구소, 보스턴대 연구팀과 함께 헌팅턴병 환자의 뇌조직, 마우스, 세포모델을 실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경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XIAP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발현되지 않게 되면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을 발견했어요. 마우스 모델이 아니라 헌팅턴 환자의 뇌조직에서 발견한 새로운 병리기전이라는 점이 본 연구의 큰 의의입니다. 헌팅턴병뿐 아니라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같은 다른 퇴행성 뇌 신경계 질환의 병리 기전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질환의 병리 기전을 밝혀야 그 기전을 돌이킬 수 있는 스위치를 찾고, 질병 극복 메커니즘을 발동시킬 수 있죠.”

우리의 뇌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보를 교환하며 감각과 움직임, 언어, 기억, 사고 등 신체 각 부분을 통솔한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던 중 특정 신경세포가 사멸하거나 연결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세포가 관장하고 있던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서혜명 교수는 왜 특정 뇌 신경세포가 특정 퇴행성 질환으로 특이적으로 퇴행하는지 그 병리학적 기전을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퇴행성 뇌 신경계 질환으로 꼽히는 헌팅턴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의 공통점은 모두 노화에 의해 점진적인 퇴행 과정을 겪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인지능력이 퇴행해 기억이 감소하고, 헌팅턴병과 파킨슨병은 움직임이라는 동일한 지점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헌팅턴병은 원치 않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며 파킨슨병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기능만 퇴행하는 것을 ‘선택적 취약성(Selective Vulnerability)’이라 한다.

“세포 내 모든 대사를 위한 에너지원을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세포가 퇴행하는 단계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특정 세포들이 퇴행하고 죽어가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포 내 에너지 대사를 연구하는 분야를 바이오에너제틱스(bioenergetics)라 하는데 최근 퇴행성 뇌질환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 서혜명 교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인 헌팅턴병의 뇌 신경세포 손상 기전을 발견해 주목받았다.
▲ 서혜명 교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인 헌팅턴병의 뇌 신경세포 손상 기전을 발견해 주목받았다.

■ 죽어가는 뇌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대체

세포가 퇴행하고 죽어가는 것이 문제라면 세포를 치료하거나 건강한 세포로 대체하면 어떨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세포치료 연구다. 서혜명 교수는 세포의 퇴행을 늦추고 신경 보호를 유도하기 위해 유전자 치료 및 세포치료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대체하고자,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hiPSC, human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유래의 건강한 신경세포를 분화하고 기능을 찾아가는 연구를 진행한다.

“퇴행성 뇌 신경질환은 특정 세포들이 그 기능을 감당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므로, 문제 되는 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이식해줌으로써 그 질환의 문제점을 극복해보겠다는 접근입니다. 2020년 미국 하버드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환자의 자가세포치료 임상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서혜명 교수는 이렇게 퇴행성 뇌 신경질환을 연구하며 특정 세포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이를 통해 뇌라는 인간의 가장 복합한 조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 자체를 연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지, 기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해질 수 있는지와 같은 인지적인 기능뿐 아니라 어떻게 슬픈지, 기쁜지, 사랑은 무엇이고 미움은 무엇인지, 어떻게 감정의 조절이 가능하며, 정신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지 등 감정과 정서적인 기능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뇌 신경질환의 병리학적 기전을 연구하는 것은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ADHD,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인지적 문제를 겪는 알츠 하이머의 병리 기전을 통해 환각이나 망상 등을 겪는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팁을 얻는 것이다.

▲ 병리학적 분석을 위해 치매 모델 형질전환 생쥐(5xFAD mice)의 동결된 뇌 조직을 마이크로톰(Microtome) 장비를 이용해 얇은 적정 두께의 절편으로 만드는 과정
▲ 병리학적 분석을 위해 치매 모델 형질전환 생쥐(5xFAD mice)의 동결된 뇌 조직을 마이크로톰(Microtome) 장비를 이용해 얇은 적정 두께의 절편으로 만드는 과정

■ 생명과학의 모든 질문은 뇌과학으로 귀결

노인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퇴행성 뇌질환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환자 개인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문제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뇌질환 연구를 지원하는 국가들이 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뇌세포를 대상으로 연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뇌과학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영국, 네덜란드, 호주, 일본, 중국 등은 오래전부터 뇌은행(Brain Bank)을 운영해 왔다. 뇌은행은 죽은 후 뇌질환 연구를 위해 쓰이도록 환자들이 뇌를 기증하는 곳이다. 앞서 언급한 서혜명 교수팀의 헌팅턴병 관련 이전 연구성과들도 실제 헌팅턴병 환자들의 뇌세포를 토대로 연구했기에 가능했다. 세계 최대 뇌은행인 하버드 뇌은행에서 분양받아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뇌은행이 신설되고 있지만, 뇌 기증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뇌과학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생명과학의 대다수 질문은 뇌과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즉, 미래에 우리가 가지게 될 많은 의과학적인 질문들은 반드시 뇌과학적인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우리들의 삶 자체가 모두 뇌의 기능으로 인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일이죠.”

뇌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서혜명 교수에게 뇌는 언제나 경이로운 연구대상이다. 그래서 뇌에 관한 연구를 멈출 수가 없다. 

▲ 서혜명 교수가 이끄는 ‘세포신경과학 연구실’에서는 퇴행성 신경질환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결과 분석, 토론 등의 연구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생체 외(in vitro) 세포 연구, 생체 내(in vivo) 동물 연구, 환자 뇌 조직 연구, 바이오 빅데이터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 서혜명 교수가 이끄는 ‘세포신경과학 연구실’에서는 퇴행성 신경질환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결과 분석, 토론 등의 연구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생체 외(in vitro) 세포 연구, 생체 내(in vivo) 동물 연구, 환자 뇌 조직 연구, 바이오 빅데이터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PER'의 2022년 가을호(통권 26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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