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학과 함현호 교수

가까운 사람과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정치가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이라는 방증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이념적 갈등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아젠다로 논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함현호 교수를 만났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민주주의 25개국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 실험 실시

사상과 제도, 행태, 국제관계 등 정치학의 연구 주제는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정치 행위자가 주어진 정치 제도 내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정치적 태도나 성향, 정책을 형성해가는지 파악하는 것은 정치 분야의 큰 연구 주제 중 하나다. 비교정치를 전공한 함현호 교수도 관련해서 연구를 지속해왔다.

지난 3월, 함현호 교수의 연구 논문이 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 ‘미국정치학회보(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SJR 기준 정치학 분야 1위)’에 게재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논문명은 ‘분열과 통합: 유럽 정당주의의 속성과 연합 파트너십의 역할(Divided We Unite: The Nature of Partyism and the Role of Coalition Partnership in Europe)’. 해당 논문은 소속 정당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게 한다. 기존 연구들이 대부분 일반적인 설문조사나 관찰데이터 분석을 위주로 진행한 것과 달리 함현호 교수는 독창적인 연구 방법을 적용했다. 바로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과 신뢰 게임(trust game)을 활용해 의사결정 실험을 설계한 것이다. 함현호 교수는 2019년 5~8월 유럽 내 25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별로 1200명씩 설문 실험을 진행하고, 이중 유효 답변자인 총 2만 9827명의 의사결정 내용을 취합해 교차국가적 분석으로 결과를 도출했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응답자의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 ‘자기보고식(self-reported)’ 설문조사를 실시해왔습니다. 하지만 응답자들이 외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솔직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답변의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독재자 및 신뢰 게임을 활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성별, 연령, 사회계급, 종교, 국적, 정당 등의 요건이 모두 다르게 설정된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고, 실험에 참여한 응답자들이 그 가상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파악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뜻밖이었다. 피실험자들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정당’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온 성별이나 종교, 인종보다도 정치·이념적 갈등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함현호 교수의 이번 연구는 최근 전 세계 정치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와도 이어진다. 정서적 양극화는 자신이 지지하거나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는 더 강한 호감이나 신뢰를 나타내고,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더 강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는 경향을 말한다. 정당이나 이념이 정서적 양극화의 기준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 큰 갈등과 균열을 마주하게 됐다.

 

정치·이념적 갈등, 정서적 양극화는전 세계의 중요한 화두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의 갈등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는 직간접적인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_함현호 교수
정치·이념적 갈등, 정서적 양극화는전 세계의 중요한 화두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의 갈등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는 직간접적인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_함현호 교수

 

■사회 갈등으로 자리 잡은 정치·이념적 갈등

“‘파티잔십(partisanship)’ 즉, 당파성이나 정당일체감이라고 하는 것은 국회의원이나 정당인 같은 정치 엘리트나 유권자와 같은 정치 행위자들이 특정 정당에 애착심 또는 충성심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제 연구는 이러한 파티잔십이 다른 사회정체성과 비교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인과적·교차국가적 근거를 보여줍니다. 파티잔십 자체는 전혀 나쁜 게 아니에요. 우리의 정치제도,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파티잔십이 정서적 양극화로 발전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죠.”

영국 공영방송사 BBC가 2018년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에 의뢰해 전 세계 27개국을 대상으로 사회 분열과 관련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 간의 갈등’을 꼽은 비중이61%에 달했다. 미국(53%)이나 영국(40%), 독일(33%), 캐나다(29%), 호주(29%)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 정도도 2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35%)를 차지했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평가한 의견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갈등 유형 중에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이었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87%를 차지했다.

2021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각’하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의 비율이 무려 90%인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7개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나란히 1등을 차지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이 시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정치·이념적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소속 정당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함현호 교수의 논문이 지난 3월, 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로 꼽히는 ‘미국정치학회보’에 게재됐다. 사진은 해당 논문의 자료 이미지.
소속 정당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함현호 교수의 논문이 지난 3월, 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로 꼽히는 ‘미국정치학회보’에 게재됐다. 사진은 해당 논문의 자료 이미지.
소속 정당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함현호 교수의 논문이 지난 3월, 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로 꼽히는 ‘미국정치학회보’에 게재됐다. 사진은 해당 논문의 자료 이미지.
소속 정당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함현호 교수의 논문이 지난 3월, 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로 꼽히는 ‘미국정치학회보’에 게재됐다. 사진은 해당 논문의 자료 이미지.

 

■우리 사회, 이대로 괜찮을까?

“정치·이념적 갈등, 정서적 양극화는 전 세계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우는 그 갈등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에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언론·정보 환경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이와 더불어 정당 및 정치 엘리트들의 협력과 연합의 부재가 이러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심화하는 갈등과 양극화는 정치적 불신과 분노, 반감, 혐오를 증가시켜 사회의 협력 수준을 낮추고 정치적 갈등과 교착 상태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원리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내 집단을 극단적으로 편애하고, 다른 집단을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경향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이중 잣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제도적,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지 않고 훼손했다 해도 이를 비난하기보다는 눈감아 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정치·이념적 갈등과 정서적 양극화를 해결할 묘수는 없을까?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일. 함현호 교수는 양극화를 추동하는 미디어와 정치 환경의 문제는 사회적 공감과 신뢰, 중용과 관용을 강조했던 오랜 정치학 연구들의 시사점과 관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더 큰 균열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들은 단지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낮은 출산율을 경신하는 중입니다. 남자형제·남자친구·남편·아들이 없는 여성과 여자형제·여자친구·아내·딸이 없는 남성이 넘쳐나는 시대에요. 이것은 남녀 갈등을 넘어 우리 주변인에 대한 공감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갈등 해소는 교류와 이해, 공감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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