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s Review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엄구호 교수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시작됐다. 양국 간 협상이 좀처럼 타결되지 않는 사이 도시는 무너져 황폐해지고, 민간인 학살 정황 등 안타까운 소식들까지 연이어 뉴스를 탔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는 괴리감이 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하지만 이 전쟁을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엄구호 교수

 

■지정학 위기의 문을 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제적 갈등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을 국제질서라고 정의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강대국들이 지금이라도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에 나서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혼돈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어쩌면 이번 전쟁이 제3차 대전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1차 대전 패전 후 당시 바이마르공화국은 베르사유 조약이 준 굴욕감으로 인해 강한 독일로 국민들을 단결시켰고 결국 독일은 2차 대전을 일으켰다. 1991년 말 소련의 해체는 패전이 아니었음에도 국제사회 속 러시아의 위상을 크게 추락시키며 러시아인들이 일종의 바이마르병을 앓게 했고, 이것이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으로 인한 안보 위협 때문에 일어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간 전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지정학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러시아와 서구의 국제전이다. 또 미국의 억지정책으로 서구 기술 표준의 현대화를 이루기 어렵고, 기축통화 달러의 횡포로 자국 화폐인 루블의 환율 인하 피해를 봤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러시아가 원자재를 레버리지(leverage)로 벌이는 경제 전쟁이기도 하다.

이제 국제경제도 경제 논리보다는 안보 논리가 우선될 것이며 경제안보가 전통안보보다도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소위 수정주의 세력인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이 미국에 함께 맞서는 다극 질서가 될지, 그도 아니면 인도, 튀르키예(터키), 브라질 등 지역 강국의 힘이 기존 강대국과 기회주의적으로 연대하는 무극 질서가 나타날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정학적 위기가 또렷해지리라는 것이다.

■장기전 가능성이 높아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애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으로 전쟁의 결말은 매우 불확실해졌다. 돈바스 지역의 영토를 포기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와 돈바스 지역의 점령이 종전의 최소 조건인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맺기는 현재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쟁 지속의 부담을 느끼는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의 육상 통로인 헤르손과 마리우폴을 잇는 소위 ‘노보 로시야’ 지역 점령 후 우크라이나 영토 분할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이 시점에서 국제협상을 원하겠지만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가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이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향후 난민 문제로 미국에 협상을 강력히 요구한다면 국제협상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으나 타결 전망은 부정적이다. 국제협상이 결렬된다면 영토를 빼앗긴 우크라이나도 강력한 대러 제재 지속에 불만일 수밖에 없는 러시아도 전쟁을 종료하기 어렵고, 이로써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이 건강 문제나 국내 반전 여론으로 실각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아직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이번 전쟁이 러시아에 준 가장 큰 타격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학살한 전범국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나름 소프트파워 구축에 노력해 온 러시아로서는 큰 손실이며 과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진영화하고 있다. G20 중 대러 제재에 참여하는 국가와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10:10이다.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국민의 수가 세계 절반을 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수혜국이다.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에 두 개의 전장을 갖게 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중국 압박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중 의존성도 커져 중국의 경제력과 러시아의 국방력이 결합하는 중국의 대미 전략도 가능해질 수 있다. 전통적인 대러 우호국이며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안보협의체) 일원인 인도가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러시아 편중적 중립 입장을 취한 것도 미국에는 부담이다. 또한 그 실체가 불분명했던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경제 5국)가 러시아 지지 입장을 보인 것도 향후 냉전 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선결 조건은 물론 이번 전쟁의 평화적 협상 타결이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화적 입장을 갖기 어렵다. 이번 전쟁의 결과가 정권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도 돈바스를 포기하는 협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민족주의 정서가 폭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젤렌스키 대통령도 돈바스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내에 국제 협상이 이뤄지고 러시아가 국제사회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국제 사회가 무한정 러시아를 압박하기는 어렵다. 에너지와 곡물 가격을 필두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글로벌 인플레가 심각해지고 있고 심지어 스태그플레이션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인명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어 서구가 무조건 계속 지원하는 것이 결국 우크라이나의 소멸을 이끌 가능성도 있다. 천만이 넘는 난민이 발생하고 있어 유럽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역시 인명 피해가 적지 않고 경제적 타격도 점차 커지고 있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모두가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는 결국 미국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러-중 밀착이 장기적으로 미국 국익에도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정 양보를 통한 미국의 협상 주도만이 러시아의 국제사회 복귀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가치외교와 경제안보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대외전략 필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동슬라브족으로서 키예프 공국은 러시아의 역사적 모태 국가이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자신들의 상황이 같은 민족끼리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며,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한국에 대해 우호적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어떨까? 독립 초기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열강의 안보 보장을 확인한 부다페스트 각서에도 불구하고 국가 존폐의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 이들을 보면서 지정학적 단층 국가인 한국도 안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전쟁은 단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저마다 이유가 상당한 각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국제관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이 전쟁의 잔혹한 장면이 이어지는 뉴스를 보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악마처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장기화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동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있고, 미-일 간, 중-러 간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강화되면서 동북아에 신냉전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울 수 있다. 또 러시아가 서구와의 전략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균형 수단으로서 북한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북-중-러 삼각 협력체제가 더욱 선명한 모습을 드러낼 테니 북핵 해결은 더 어려워지고, 한-러 간 전략적 협력의 공간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새롭게 출발한 윤석열 정부는 이런 신냉전적 국제정치 환경과 스태그플레이션 및 공급망 위기의 국제경제 환경에서 국정을 펼쳐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미-중 경쟁의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 민주주의 진영과 소위 수정주의 진영의 대결이 심화되고, 대결의 수단으로 경제적 자원이 이용돼 공급망이 진영화 된다면 한국 정부도 일정 수준 가치외교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외교 정책 수립에 경제안보 요소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단기적 국익 차원에서는 미-중 간 균형외교와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것이 맞겠지만 수정주의 세력의 부상을 국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는 국제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용외교에 편중하는 것은 우리의 장기적 국익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가치외교를 강조해야 함은 불가피하다. 러시아가 한반도 정세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한-러 간 경제협력의 규모가 작지 않은 점은 분명하지만, 외교적으로 대러 규탄 입장은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난하고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전후 복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협력으로 지정학적 부담을 더는 전략은 꼭 병행되어야 한다.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유지·강화하여 북방정책의 동력을 유지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중앙아시아를 통한 우회적 대러 경제협력을 이어가야 한다. 또한 대러 제재의 틀 속에서라도 민간의 대러 경제협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PER'의 2022년 여름호(통권 262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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